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파일:external/i2.wp.com/emmanuel-adebayor1.jpg|w=640]] 토고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였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 지역예선에서는 11골을 넣으며 무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프랑스를 격파하며 8강(7위)을 기록한 세네갈을 탈락시키며 토고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끈다. 그리고 그 때 토고는 2006 월드컵[* 32개국 본선.]에서 [[대한민국]], [[스위스]], [[프랑스]]와 같은 조가 되었다. 하지만 보너스 문제로 인하여 선수들과 토고 축구 협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등[* 언뜻 보면 선수들이 돈만 밝히는 것 같지만, 토고 축구 협회가 좀 [[병맛]]이었다. 당시 토고 축구 협회는 [[쿠데타]]를 일으켜 38년 동안 토고를 철권통치했던 독재자 [[냐싱베 에야데마]](1935 ~ 2005)장군의 아들 [[포르 냐싱베]](1966 ~ )가 [[회장]]으로 있었는데, 이 자는 [[FIFA]]의 지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예전에 약속했던 본선 진출에 대한 [[보너스]]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선수들은 협회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고, 보너스 지급을 직접 요구하기에 이른 것. FIFA의 출전 지원금과 경기 출전수당에서 선수들이 요구한 금액을 주어도 10억여 원이 남았었다고 하던데 그걸 안 줬다. 참고로 포르 나싱베는 애비가 죽자마자 정권을 이어받아서 2023년 현재까지 토고 [[대통령]]으로 집권하여 2대에 걸쳐 56년째 집권하고 있다.] [[악재]]가 터져 토고 대표팀 분위기는 엉망진창이었고, 그 때 아데바요르는 아직 잠재력이 터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토고는 3전 전패[* 대한민국과의 [[아드보카트호/2006 FIFA 월드컵 독일/토고전|1차전]]에서는 전반에 팀 동료 쿠바자의 월드컵 데뷔 첫 선제골로 후반 초반까지는 경기를 장악했으나, 선수단의 수준이 높지 않아 확실하게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다. 그리고 팀 동료이자 주장 아발로가 퇴장당한 뒤 한국 공격수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였고, 급기야 [[이천수]]의 프리킥 동점골과 [[안정환]]의 역전골에 의해 무너졌다. 2차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고, 3차전은 16강 가기 위해 혈안이 된 프랑스를 막기에는 토고의 전력이 너무 약했다.]로 조별리그에서 탈락(30위)하여 16강 진출에 실패한다.[* 이런 졸전에 분노한 토르 나싱베 대통령과 [[오토 피스터]] 토고 감독은 갈등을 겪었고, 결국 피스터는 당해 가을에 사퇴했다. 한편 선수들은 감독 탓을 절대 하지 말라며 같이 분노했고, 이후 토고는 다시 아프리카 축구에서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있다. 심지어 오토 피스터 감독조차도 월드컵 개막 4개월 전인 2006년 2월 말에 부임한 상태였고, 이미 그 전에 토고를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 [[나이지리아]] 출신 [[스티븐 케시]] 감독이 [[2006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집트]]에서의 부진 때문에 [[해임]]된 이력까지 있었다.] [[201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앙골라]]에 출전하기 위해 해당 대회 개최국 [[앙골라]]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괴한의 습격을 받아 3명이 사망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진다'''. 아데바요르 본인은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대표팀 동료[* 사망자 중에 선수는 없고 버스 기사와 스태프가 숨졌다. 다만 부상으로 선수 인생이 끝난 선수들은 있었다.]가 사망하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보며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렸고, 결국 토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이때 인터뷰 할때 입은 옷이 '''아스날 피케티셔츠'''였으며, 그 난장판을 쳐놓고 나와놓고 입은 옷이 아스날 의류라 상당히 의아해 한 아스날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201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대표팀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했고, 지역예선에서 케냐와 가봉을 차례대로 무찌르고 본선에 진출한 후 본선 조별리그에서 튀니지를 골득실로 제치고 토고 대표팀의 사상 첫 네이션스컵 1라운드 통과 기록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스트라이커로서는 드물게 4번을 선호하는 듯 하다.[* 진짜로 그가 4번을 선호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사실 아프리카 국대에선 4번을 에이스에게 준다.][* 나이지리아의 [[은완코 카누]]도 스트라이커임에도 국대에서 4번을 달았다.] 국가대표팀 한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팀 케이힐]]과 같은 예가 있으니 아주 이상할 건 없지만, 등번호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 깨는 면이 있다. 비슷한 포지션임에도 3번을 고집하는 가나의 [[아사모아 기안]], 5번을 단 [[튀니지]]의 [[지에드 자지리]]의 예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